'코로나19'와 '우울감(blue)'이 합쳐진 신조어로,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일상에 큰 변화가 닥치면서 생긴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을 뜻한다. 이는 감염 위험에 대한 우려는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일상생활 제약이 커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랍니다.
다시 2주간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됐다.
코로나19 사태에서 감염과 전염 외에도 함께 고민하고 풀어야 할 일들이 있다. 코로나19는 사회적 거리두기, 격리 등으로 직업, 가정, 학업, 취미에 이르는 일상의 모든 영역에 변화를 요구했다. 이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우울감, 불안, 염려뿐만 아니라 사회적 단절, 무기력감 등 다양한 강도와 범위의 사회적‧심리적 과제들이 생겨났다.
사회성을 연구하는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학자인 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이런 변화를 총칭하는 말이 ‘코로나 블루’라고 생각한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코로나 블루 중 사회적 격리가 가져올 수 있는 심리적 영향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온기’의 중요성…‘관계 맺기’를 못할 때 생기는 변화
독립생활을 하는 일부 생명체를 제외하고, 대다수의 동물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필요로 한다. 단지 생존에 유리해서가 아니다. 우리 뇌가 본능적으로 원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체취와 체온은 교감신경의 흥분을 낮춰 정서적 안정감을 가져다준다. 장기적으로는 심혈관 질환, 면역 기능에 변화를 줘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
온기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심리학 실험이 있다. ‘가짜 원숭이 실험’으로 알려진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의 실험이다. 할로우 박사는 새끼 원숭이의 우리 안에 먹이를 주는 ‘철사 엄마’와 부드러운 천으로 만들어진 ‘헝겊 엄마’를 넣어주고 실험을 진행했다. 새끼 원숭이가 생존을 위한 먹이에 더 집착하는지 아니면 부드러운 감촉에 집착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실험 결과, 새끼 원숭이는 허기가 질 때만 철사 엄마에게 가서 젖을 먹을 뿐, 그 외 시간은 헝겊 엄마에게 붙어 있었다. 심지어 헝겊 엄마에게 매달려 철사 엄마의 젖을 먹고, 공포를 느끼면 안정될 때까지 헝겊 엄마에게 붙어있었다. 본능적 욕구보다도 포근하고 따뜻한 품에 애착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사랑의 원천’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1958년 국제학술지 American Psychologist에 실렸다.
사회적 결핍이 뇌 구조를 변화시킨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지난 1월 6일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루마니아 고아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예로 살펴보자. 킹스칼리지런던대 등 영국 연구진은 생후 1년 동안 다른 이의 품에 안긴 적 없던 루마니아 고아들 67명의 뇌를 자기공명영상(MRI)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일반 입양아들에 비해 루마니아 고아원 입양아들의 뇌 부피가 약 8.6%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고아원에서 보낸 시간이 1개월 길수록 뇌의 부피는 0.27% 더 감소했다. 극단적 사례이기는 하지만, 관계 맺기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사회의 일부분임을 자각할 때 오는 심리적 안정감
이러한 ‘관계 맺기’는 어떠한 온라인 혹은 전자기기로 대체되기 어렵다. 관계란 뇌가 복합적 활동을 펼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상대방과 대화할 때 뇌는 시각과 청각뿐만 아니라 후각과 촉각까지 사용하며 내적 감정상태, 기억회로를 동원한다. 상대의 표정, 손짓, 태도 등 비언어적 정보를 파악하는 동시에 실시간으로 언어까지 사용한다. 이 모든 작업을 위해 복잡한 뇌 회로가 동시에 쓰인다. (그런 의미에서 관계 맺기는 뇌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피로도가 높은 작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 뇌는 이런 피곤한 자극을 끊임없이 필요로 한다. 만약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장기간 갇혀 모든 감각이 차단되는 상황이 되면(물론 사회적 거리두기가 독방과 같은 극단적 상황은 아니지만), 자극에 목마른 뇌는 환청이나 환각들을 만들어낸다. 자극에 대한 갈망이 극심한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심리적 안정감은 자신이 사회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자각할 때 온다. 사람들은 사회에서 잊혀 질까, 필요한 존재가 아닐까, 내 자리가 없을까 등을 걱정하지만 사회생활을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았을 때 심리적 편안함을 얻는다. 아무리 내성적인 성향을 가졌더라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동일하다. 이러한 고민이 일시적이라는 기대감이 있다면 그나마 낫지만 장기간 지속되면 자신에 대한 확신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격리에 따른 뇌의 변화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뜻하지 않은 가족 간의 갈등이 생겨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더 문제가 되는 집단은 가족과 떨어져 사는 1인 가족들이다. 타인을 만날 기회가 줄어든 이들은 온라인 정보에 귀를 기울이게 되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심리적 고립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격리는 뇌에 어떤 변화를 줄까. 동물실험의 사례를 들어보고자 한다. 생쥐를 장기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면(생쥐의 경우 2주로 생쥐의 일생에 비해 꽤 긴 시간이다), 뇌 백색질의 수초(신경섬유 다발을 보호하고 있는 막)들이 벗겨지고 뇌 영역들의 부피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난다. 백색질의 수초가 벗겨진다는 것은 전선의 피복이 벗겨지는 것과 유사한 현상으로 신경회로를 통한 정보 전달이 유의하게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격리기간이 길어진다면 어떨까. 미국 연구진의 쥐의 격리기간에 따른 뇌 변화를 추적 관찰했다. 약 한 달의 격리 이후 쥐의 뇌에서는 신경세포 사이 신호전달 역할을 하는 수상돌기 가시(dendritic spine)의 밀도가 증가했다. 수상돌기 가시의 밀도가 높을수록 기억 등 뇌의 인지기능이 높아진다. 외부 자극이 줄어든 뇌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작전을 펼친다는 의미다. 하지만 격리가 3달이 넘어서자, 수상돌기 가시의 밀도가 도로 감소했다. 지속된 고립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이와 함께 기억력을 증진시키는 단백질(BDNF)의 농도는 감소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의 농도는 증가했다.
뇌 발달하는 시기 ‘코로나블루’ 더 주의해야
아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친구들과 놀이터나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놀지 못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아동 및 초‧중‧고교생 시기는 뇌가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때다. 이 시기의 사회적 경험은 정상적인 뇌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 이들은 현재 학교생활(선생님과의 관계를 통해 배우는 사회적 규범과 역할에 대한 책임감, 동급생들과 누리는 다양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대처법 등)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뇌의 발달을 위해서는 다양한 자극이 필수적이다. 이 자극은 온라인 학습으로 대체될 수 없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임상적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발달이 꼭 필요한 시기에 스스로를 소외시킨 이들이 사회에 정상적으로 복귀하는 경우는 드물다. 코로나19 확산 예방이 가장 중요하지만, 온라인 학습으로 학교생활을 대체할 수 있다고 가벼이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회적 격리가 너무 길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고, 아이들의 회복력이 예상보다 훨씬 높기를 기대해 본다.
영국 연구진은 격리의 심리적 영향을 분석한 24편의 논문을 종합한 결과, 정신적 피해를 감소시키기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Brooks et al., 2020). 감염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충분히 습득할 것. 고립으로 인한 지루함, 우울감을 줄일 수 있도록 가족, 친구, 동료와 온라인을 통한 소통이라도 지속할 것 등이다. 또한 강요보다는 스스로 필요성을 납득하여 자발적으로 격리에 참여하는 것이 정신적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늘어나는 환자 수만큼이나 ‘코로나 블루’를 앓는 사람들 역시 늘어나고 있다. 치료의 최전방에서 고군부투 중인 의료진, 질병관리본부, 119 대원 등을 비롯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 그리고 이 사태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 등 너무도 많은 이들에게 관심과 위로가 필요한 때다. 이 시기가 초래하는 모든 심리적 부채를 예상하며, 말 한마디와 행동 하나라도 위로와 감사 그리고 동지의식을 담아 전하고, 서로를 감싸 안았으면 한다.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아마도 서로의 상처를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의대 재학시절, ‘운동의 긍정적 효과를 15개 이상 열거 하시오’라는 주관식 문제가 시험에 나왔다. 어떻게 15가지나 열거할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15가지보다 더 많은 해답들을 계속 찾아가게 된다. 심리적으로 복잡하고 어려울 때, 특히 활동 범위가 줄어들어 위축될 때는 무조건 몸을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운동을 하면 뇌가 건강해진다는 연구결과들은 수도 없이 많다. 공원, 강변, 운동장 등 야외에서 30분 이상 몸을 움직이고 햇살을 받는 것은 아주 이롭다. 혼자든 여럿이든 상관없다. 몸을 움직이자. 이것이 이 우울한 시기를 잘 벗어날 수 있는 진리이다.
※ 원문 출처 : 기초과학연구원
기초과학연구원(IBS)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이하 코로나19)와 코로나19의 원인인 사스-코로나바이러스-2(SARS-CoV-2 또는 2019-nCoV)에 대한 과학 지식과 최신연구 동향을 담은 <코로나19 과학 리포트>를 발행합니다. IBS 과학자들이 국내외 최신 연구동향과 과학적 이슈, 신종 바이러스 예방·진단·치료에 도움이 될 만한 연구진행 상황과 아이디어 등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은이 기초과학연구원(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 초빙연구위원‧연세대 의과대학 연구조교수(정신과 전문의‧신경과학)
https://www.ibs.re.kr/cop/bbs/BBSMSTR_000000000971/selectBoardArticle.do?nttId=18335&pageIndex=1&searchCnd=&searchW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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